오늘은 우리나라 가곡중 대중들로 부터 가장 사랑받는 가곡중의

하나인 김동진 작곡의 "가고파"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 한다.

이글 역시 월간 비바체 8월호에 필자가 기고한 글의 내용중 일부임을 밝혀둔다.

 

몇 년 전 월간조선에서 한국의 음악계를 대표하는 작곡가. 성악가

1백인에게, 우리 나라 최고의 한국가곡은 어떤 곡인지?

최고의 한국가곡 작곡가는 누구인지?

또 한국가곡을 가장 잘 부르는 성악가는 누구인지?

설문조사를 하여 발표한 적이 있었다.

 

"최고" 라고 하는 말이 불러일으키는 거부감이 크고 최고에 대한

기준이 저마다 달라서 조사과정이 수월하지만은 않았지만

(어떤 이는 "개인적 취향을 말하면 몰라도 최고를 꼽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응답을 거부한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여하튼

이런 저런 과정을 거친 결과 작곡가. 성악가 1백인이 뽑은

우리 나라 최고의 한국가곡은 오늘 독자 여러분 들과 이야기를 나눌

김동진 작곡의 "가고파" 로 선정되었고 최고의 한국가곡 작곡가로는

역시 가고파를 작곡한 김동진 님이 선정되었다, 그리고 한국가곡을

가장 잘 부르는 성악가로는 베이스 바리톤 오현명 님이 선정되었다.

 

이 "가고파"가 최고의 한국가곡으로 선정된 데에는 설문조사에 응한

작곡가와 성악가의 개인적인 선호도와 함께 대중적인 인지도에서도

다른 곡들에 비하여 우위에 있는, 다시 말해서 많은 대중들로부터

널리 사랑받는 곡 이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작품설명》

가곡 "가고파" 는 김동진씨가 숭실학교 제학 시절 열아홉 살에

만든 곡이다. 김동진 씨는 숭실전문학교 2학년 국어 시간에

국문학자였던 양주동 선생에게 이 시를 배우면서 가슴 뭉클한

감명을 받았다. 양주동 선생은 친구인 노산(이은상)의 시를

학생들에게 낭독해 주었던 것이다.

 

본래 이은상의 시 "가고파" 는 10장으로 되어있는데 김동진씨는

먼저 앞의 1장에서 4장까지의 시에만 곡을 붙여 가곡 "가고파"로

세상에 알리고 약 40년후인 1973년에 나머지 6장(5장-10장)에

곡을 붙여 "가고파 후편" 으로 이름하여 발표하였다.

 

가고파 후편도 전편에 못지않은 아름다움과 서정성 또 극적인

요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현제 연주회장 에서는 보통 4절까지의

시를 노래한 전편만이 연주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호의 "실제적인 연주와 해석" 코너 에서도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전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해 나갈 생각인데, 후편에 대해서는

앞으로 기회를 보아 적당한 때에 독자 여러분 들과 다시 한 번

대화하는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

 

"가고파" 는 이은상씨가 만주에서 고향인 마산 앞바다를 그리워하며

쓴 시로 알려져 있는데, 단순히 "마산 앞 바다"라기보다 해방된 조국을

그리는 마음으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가고파 후편은 실향민 처지가 된 김동진씨가 통일된 조국을

그리는 마음으로 작곡을 하였다고 하는데 시인과 작곡가의 처지는

달랐지만 가사내용은 기가막히게 들어맞았다고 생각되어진다.

 

 

가곡 "가고파" 에 대하여 작곡가 자신은 이렇게 평하였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 통일조국에 대한 염원, 죽음을 앞에 둔 종교적

경건함까지,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져 있는 노래" 라고...

 

이 노래에는 에피소드가 많다. 그중 한가지를 소개한다.

6.25가 나자 그는 남쪽으로 피난을 내려오다가 휴전선 부근에서

아군의 검문을 받게 된다. 마침 신분증을 갖고있지 않았던 그는

얼른 그들에게 "가고파" 라는 노래를 들어 본일이 있느냐?

라고 물었다. 그중 헌병 한 명이 "아! 그 노래 들어 본적이 있지요

" 하고 대답했다. 김동진씨는 "내가 바로 그 "가고파"의 작곡자요" 라고

말했더니 무사 통과 되었다 한다.

 

박인수(테너)님이 부른 : 가고파



김화용님이 부른 : 가고파(전_후 편)

 

 

참고적으로 이은상의 시 가고파 전10장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내 고향 남쪽 바다 /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요 /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제 같이 놀던 /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요 /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 보고파라 보고파ㅣ

 

그 물새 그 동무들 /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타가 /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 옛날같이 살고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 찾아가자 찾아가   ☜(전편)

 

 

물 나면 모래 판에서 / 가재 거이랑 달음질 치고

물 들면 뱃장에 누워 / 별 헤다 잠 들었지

세상일 모르던 날이 / 그리워라 그리워

여기 물어 보고 / 저기가 알아보나

내 몫엣 즐거움은 / 아무 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 가 안기자 가 안겨

처녀들 어미되고 / 동자들 아비 된 사이

인생의 가는 길이 /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  아까 와라 아까 와

일하여 시름없고 / 단잠 들어 죄 없은 몸이

그 바다 물 소리를 / 밤 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 부러워라 부러워

옛 동무 노 젖는 배에 / 얻어 올라 치를 잡고

한 바다 물을 따라 / 나명들명 살까이나

맞잡고 그물 던지며 / 노래하자 노래해

거기 아침은 오고 / 또 거기 석양은 져도

찬 얼음 센 바람은 /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나 살꺼나 /

돌아가 알몸으로 깨끗이도 깨끗이      ☜(후편)

 

《작곡자와 작사자에 대하여》

 

작곡가 김동진(金東振)(1913-현제)

●1913년 평남 안주 출생.

●숭실중학, 숭실전문, 일본 고등음악학교 졸업.

●숭실전문 음악교수 말스베리(Dwight R. Malsbary)에게

   바이얼린, 피아노 화성학, 작곡법 사사.

●이화여전, 경희대 음대교수, 경희대 명예교수.

●숭실중학 5학년때 첫 작품 "봄이 오면" 작곡.

●1939년 만주 신경 교향악단 단원.

●1944년 신창악 기법의 오페라 "춘향전" 발표.

●대표작: "가고파" "내마음" "목련화" "봄이 오면"등 가곡100여 곡과

   오페라 "춘향전" "심청전" 국악가락의 관현악곡 "만가" "제례악"등.

●작품집: "신창악 작곡집"등.

 

☞신창악 이란?

   판소리의 시김새 등의 음악적 내용과 판소리 발성을 서양식

   성악에 접목시키는 성격의 것. 즉 서양식 성악의 발성법에

   서양 음악이 갖고있지 않은 우리 전통 판소리의 다양하고 독특한

   발성의 장점을 잘 조화시켜, 우리 음악을 세계무대에 내놓자는

   생각에서 나온 새로운 노래 음악 운동이다.(김동진씨 자신은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는 가곡들 보다 "신창악"을 더 귀하게

   생각한다고 평소에 이야기 하였다)

 

 

  《김동진의 음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진다. 그 하나는

   서양의 보편적 장,단조 조성 체계를 바탕으로 한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전통음악(특히 판소리와 민요)을 바탕으로 한 음악이다.

   그의 대중성은 주로 첫 번째의 음악으로부터 온 것이다. 그의 가곡이

   이 부류에 속하며 오페라가 두 번째의 부류에 속한다 말할 수 있겠다.》

 

작사자 이은상(李殷相)(1903-1982)

●1903년 마산 출생. 호는 노산(鷺山)

●창신학교(초.중.고) 연희전문 문과, 일본 와세다 대학 졸업.

●창신학교 교사, 이대 교수. 동아.조선일보사 근무.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에 연루되 구금 이듬해 풀려남.

●1945년 사상범 예비검속 으로 평양경찰서에 갇혀있다가 8.15해방으로 풀려남.

●호남신문 사장, 청구대(현 영남대)교수, 서울대교수,

   시조 작가 협회장,  한글학회 이사, 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예술원 회원, 민족문화협회 회장, 한국 산악회 회장.

●대표작: "가고파" "사우" "그리워" "성불사" "고향생각" "봄처녀"등 시와 시조 2000여편.

●수상.수훈: 예술원상, 5.16민족상, 한글 공로상, 국민훈장 무궁화장.

●1982년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