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수 교수의 글


 


《작품설명》



봉선화는 홍난파가 일본에서 귀국 후인 1920년에 작곡되었다.



원래 이 곡은, 작곡가이자 소설가인 홍난파가, 1920년 발표한 그의 소설집《처녀의 혼》


끝에 ‘애수’라는 제목의 바이얼린 곡을 작곡하여 실었는데.(1920년 4월 20일)



1925년에 이웃집에 살던 작사자 김형준이 홍난파의 요청으로 가사를 지어 넣으면서


제목을 ‘봉선화’로 바꾸었다.



곡은 원래의 제목〈애수〉처럼, 애절한 가락과 구슬픈 정감이 잘 표현되어 있으며,


당시의 시대 상황과 맞아 떨어져, 널리 애창 되었다.



가사는 3절로 이루어 졌는데, 1절은 지나간 과거(융성했던 시절) 를
2절은 현재(고통받고 힘든 日帝下)를
3절은 미래(다시 융성한 시절에 대한 희망)를 나타낸 것이라 하겠다.



*이곡은 곡이 먼저 작곡되고 나중에 시가 붙여졌기 때문에, 작곡자의 작곡 의지와


시가 가지고 있는 가사의 의미가 반듯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



특히 3절의 가사 내용이 독립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다하여 봉선화 를 작곡한 홍난파가


우리민족의 아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독립운동가 인것처럼 알려져 있기도한데


가사의 내용과 작곡자의 작곡의지가 반듯이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려울것같다.




<제목 봉숭아 >



봉숭아=봉선화(鳳仙花)



봉선화과에 딸린 한해살이풀.



키는 60㎝ 가량이며, 7-10월에 잎 겨드랑이 에서 나온 2-3개의 가는 꽃자루 끝에


빨강. 자주. 노랑. 하양. 분홍빛. 등의 꽃이 핌.



인도. 말레이 중국 남부의 원산으로 세계 각지에서 화원.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음.



줄기와 가지 사이에서 꽃이 피며 우뚝하게 일어서 봉(鳳)의 형상을 하므로 봉선화라는


이름이 생겼다.



꽃잎으로는 백반. 소금 등을 섞어서 부녀자들이 손톱에 붉은 물을 들임.



금봉화. 봉숭아. 지갑화. 봉송아. 봉쇙이. 봉새. 봉숭화. 봉재. 라고도함.





<작곡자 홍 난파(洪 蘭坡)> (1898-1941).




경기 화성 출생. 본명은 영후(永厚).



조선 정악전습소 졸업. 연희전문 문학부. 의학부. 중퇴.



일본 우에노 음악학교. 미국 셔우드 음악학교 수학.



1921년 단편 소설집 《처녀혼》발간.



1925년 최초의 바이얼린 독주회.(최초의 바이얼린곡 작곡자)



1925년 최초의 월간 음악지 음악계(音樂界)창간.



문학작품으로 소설 ‘처녀혼’. ‘최후의 악수’. ‘폭풍이 지난뒤’. ‘새벽종’. ‘비겁한자’


‘대화’(大火).등 펴냄.



경성방송국 교향악단 조직 지휘.



주요곡: 봉선화. 성불사의 밤. 사랑. 옛동산에 올라.등 가곡과, 바이얼린 곡으로


조선의 라멘트. 여름밤의 별들. 등이있음.





☞<못다한 이야기>




홍난파를 이야기 할때면 늘 가슴 한구석이 아파옴을 느낀다.



우리나라 에 있어서 서양음악의 선구자...



그의 수많은 음악적 업적...



우리 음악계에 그의 이름과 함께 최초로 기록된 것이 어디 한 두 가지 이겠으며,


또 그가 이룬 일들이 훗날 우리 나라 의 서양음악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것 또한


어느 누가 부인 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과 존경의 눈으로만 보기에는 어딘지 답답하며 갈증을


느끼는 것은 어째서 일까?

그의 친일행적 자료를 접하거나 이야기할 때면 그를 사랑과 존경의 눈으로만


보고싶은, 아니 그렇게 생각 하고 보아왔던 나 자신이 왠지 황량한 가을바람 앞에 선


남자처럼 쓸쓸해진다.



음악가는 음악적인 면에서만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정치적인 면으로 음악가를 평가하는 것은 틀린 것인지?



그 당시의 상황에 접해보지 않고 업적 보다는 정죄만 하는 것은 바람직한 것인지?



그들을 실랄 하게 비판하고 자료를 들춰 내어 만인에게 알리는 것으로 우리의 할


일은 끝난 것인지?



끝나지 않았다면 정죄에 앞서 진정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조용히 가슴에 손을 얹고 냉정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


 


[펌] 오페라 사랑방 에서


 


저는 박선생님의 연제가 시작될때 부터 빠짐없이 읽고 있는 독자 입니다.



봉선화 음악 엤날 유성기로 녹음된것 한개를 찾았슴니다


요즈음 성악가들의 노래 같이 제대로 된 성악곡은 아님니다


그러나 홍난파 선생님이 이곡을 발표했을때


우리 조선인들이 들었을법한 소리 임에는 틀림 없을것 같아서....


아마 그때는 이렇게 불렀을거라는 생각으로 ....


매일 한번씩 한국가곡 코너 방문 하여 박선생님의 다음글을 기다리고 있슴니다


바쁘시드라도 좀더 자주 글 올려 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많은 한국가곡 이런속도로 나가면 10년도 더걸리겠네요...[죄송]..


 


아무튼 어려서 부터 한국 가곡을 무척이나 좋아 했고


또 제법 잘[?] 부르기도 했었는데


요즈음은 전혀 부르지는 못 하고 듣기만 하는 사람 이람니다..


감사 합니다 결례를 용서 하십시요 건승을 빕니다.....박정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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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글쓴이
기타 최초의 한국가곡 "봉선화"
Joos
2004-06-01 1452
1 기타 한국가곡코너의 첫페이지
Joos
2004-05-29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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